<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고전소설
고전문학 대표작 중 하나인 죄와 벌.
어릴 때부터 책장에 꽂혀있긴 했지만 무거운 제목 탓인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보았는데, 문체와 문장의 길이 때문에 읽는 속도가 매우 더뎠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먹구름 낀 분위기가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이 제법 흥미로웠다.
아래는 독서모임 <산책>을 통해 받은 질문과 당시 내가 답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0. 인상 깊은 구절들
- 그런데 인간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일까? 새로운 첫걸음, 새로운 자기 자신의 말을 무엇보다도 무서워하고 있다.
- 지금 이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돼지가 아니라고 장담할 만한 용기가 있느냐 말이오?
- 나는 교활한 속임수를 써서 밤도둑처럼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트렁크 열쇠를 훔쳐내어 내가 가져온 봉급의 나머지를 몽땅 빼내고 말았지요.
- 실제로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을 그자의 인색함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며, 전체적인 그 태도에 있는 거야.
- 즉 범죄자 자신은 거의 누구나 예외 없이 범죄를 저지르려는 순간 의지와 이성의 상실 상태에 빠질 뿐만 아니라 어린애 같은 경솔에 사로잡히고 말기 때문이다.
- 저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짓말은 모든 유기체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특권이니까요.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겁니다!
-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사랑했던 것은 모든 노력과 온갖 방법을 통해 획득한 자기 돈이었다.
- 그는 달콤한 희망을 안고 남몰래 마음속 깊이 품행이 좋고 가난한(반드시 가난해야 했다), 젊고 예쁘고 좋은 가문에 교육도 받고, 그러면서도 세상의 온갖 고초를 다 겪어 겁이 많아진 처녀, 끝까지 자기 한 사람에게만 순종하면서 한평생 자기를 은인으로 존경하고 숭배하는 그런 처녀를 공상하고 있었다.
- 나는 당신한테 머리를 숙인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 앞에 머리를 숙인 거요.
- 나는 그들에게 좀 더 가난을 맛보게 한 뒤에 나를 구세주같이 섬기게 하려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서 오히려 자기 행복에 겁이 날 지경이었다.
1. '죄와 벌' 제목의 첫인상과 읽고 난 후 전체적인 느낌
워낙 유명한 고전 소설이라 제목 자체는 익숙하지만, '죄와 벌'이 내용을 가늠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집에 세계 명작 소설 전집이 있어 웬만한 소설은 다 읽어봤는데
'죄와 벌'만 손이 안 가서 끝까지 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초반에는 인물 이름이나 관계도 복잡하고, 러시아 문학 특유의 문체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딱히 그렇다 할 큰 줄거리가 없어서 더 재미없게 느껴졌다.
중반부터는 머릿속에서 큰 틀이 어느 정도 잡혀서 집중도 잘 되고 점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2-1. 계획 살인미수 vs 우발 살인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살인미수보다 살인이 높은 형량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사회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는 전자일 듯하다.
범죄를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반사회적이고 타인에게 잠재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법을 개정할 수 있다면 계획범죄의 경우,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높은 형량을 줄 것 같다.
2-2. 살인의 합리화?
대다수의 경우엔 합리화될 수 없지만, 본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합리화될 수 있지 않을까?
옛날엔 뉴스 보면 종종 과잉방어로 처벌받는 사례도 나오고 했는데,
되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례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 경우엔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진 않더라도 개인의 멘탈에 따라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없다면 굉장히 괴로울 것 같다.
3. 봉급을 음주에 탕진한 마르멜라도프(술집에서 만난 사내)와 그의 딸 소냐(매춘을 통해 가족을 먹여 살림)의 행동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처음엔 진짜 이해가 안 됐는데,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마르멜라도프는 말이 무척 많은 인물인데, 그 와중에 계속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걸 직간접적으로 얘기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맞는 건 두렵지 않다, 맞는 건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다.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건가? 싶었다.
그래서 급기야 아내의 뜨거운 관심과 질타를 탐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에
인생의 쾌락에 대한 탐구가 가족의 사랑보다는 술을 마시는 즐거움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소냐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러시아에서는 옛날엔 매춘이 합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좀 더 접근하는 문턱이 낮고 거부감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들이 모두 굶어 죽고, 그렇다고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배경이라면
억지로 매춘을 하겠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힘겹고 특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둘의 차이는 결국 알코올 중독 여부의 차이인 것 같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의지도 약해지고, 끊을 수 없는 굴레에 갇힌 게 아닐까..
+ 자기 연민에도 중독된 듯..
4. 기억에 남는 인물
예심판사 뽀르피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로쟈를 심리적으로 압박할 때, '헤헤헤!'라고 추임새를 넣는 게 인상 깊었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했을 것 같은 느낌?
직관도 좋고 분석력도 좋은데, 자신이 로쟈를 의심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어서
로쟈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와중에도 자수를 권유하는 대범함과
로쟈가 악한 사람은 아니니 자수를 해서 감형받았으면 한다는 배려심 인상 깊었다.
4. 이 책의 주제를 표현하자면?
처음엔 이 책의 제목인 죄와 벌이 주인공에 대한 죄, 벌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나니 각 주요 인물들도 나름대로의 죄와 벌을 하나씩 갖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벌을 각각의 인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받고 싶지 않아 하는) 방식으로 받는 지점이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스비드리 경우에는 두냐를 탐해서 (육체적인 탐미) 자살로(육신을 잃음) 벌을 받았고
루쥔은 사람들 앞에 나서고 면이 살기를 원하던 사람인데, 결국 소냐를 모함한 걸 들켜 사람들에게 쪽을 당했고
주인공인 로쟈는 자신의 신념이 강한 사람인데, 자백을 통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주제는 죄를 저지르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온다.. 이 정도로 생각해 봄!
5. 별점
3점
러시아 문학체 너무 어렵고 이름 외우기 힘듦!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말이 많다.. 입을 열면 2~3페이지 분량을 술술 내뱉음.
(당시 러시아에선 원고료를 글자수로 책정해서 줬기 때문에
도스토옙스키가 일부러 엄청 길게 썼다는 후문도 있더라)
그래도 유명한 고전이니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