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Art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 후기 (롯데 뮤지엄)

IN.0 2023. 1. 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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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 타워 7층

방문일 : 2022.12.31 (토)

입장료 : 성인 19,000원 (온라인 예매)


당일 저녁 7시에 넬스룸 콘서트를 예매해 놨어서, 콘서트 전에 근처에 가볼만한 곳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잠실에서 마르지엘라 전시가 있길래 방문했다.

연말+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되어 웨이팅도 각오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

전시장 앞에 카페+굿즈샵에는 좀 북적북적하긴 했다.

작품 작업 과정들을 전시장 입구에 러프하게 배치해두었다

매표소 왼쪽에 물품보관함이 있고, 1시간 무료여서 외투를 보관해두기 용이했다.

전체 관람하는데 거의 55분? 정도 걸려서 적당했다.

작품 가이드

입장하기 직전에 이렇게 자판기가 덩그러니 있는데, 여기서 작품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패키지 안에 뭐가 들어있지는 않고, 그 자체에 가이드가 프린트되어 있다.

대학교 3학년때인가.. 일러스트 수업 때, 패스트 패션에 의한 환경오염과 허무주의에 관한 주제로

자판기에 패션 제품을 전시해두고 판매하는 일러스트를 그린 적이 있는데

갑자기 그게 떠올랐다.

전시 개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렇게 전시 개요가 무심하게 붙어있다.

저렇게 끄트머리 너덜하게 놔둔게 의도된 형식이라도, 좀 거슬리긴 했는데

직원들이 입고있는 가운의 자락과 매치되어 나름 일관성 있네 싶었다.

그래도 단가 2만원 전시인데 맨 위에 검은색 제목이라도 프레이밍 해주지..

 

헤어 포트레이츠

첫 작품은 잡지더미이다. 정확히는 잡지의 표지들.

걸려있는 잡지들 표지엔 당대 유명 인물들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찍은 사진들이 있다.

이 셀럽들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익명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보는 이의 환상을 깨지 않는다.

쌓여있는 잡지들 표지엔 달 표면이나 화산 분출, 벌판같은 풍경 이미지가 있다.

이는 걸려있는 셀럽들(환상)과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곳(현실)을 대치해 사고의 전복을 유도한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여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 인간vs대자연이라는 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스트 커버

더스트 커버는 만 레이의 <루시앙 뒤카스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참조 : 루시앙 뒤카스의 수수께끼

더스트 커버는 '갈색 인조가죽으로 덮여있는 무언가'의 형체로,

참조 작품과 마찬가지로 실존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용도의 물체인지, 이것이 어떤 욕구를 만족시킬지 알 수 없는 채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시선에 저항)

감각 뒤편의 직관의 눈으로 상상하도록 의도한다.

 

레드헤드(좌), 바니타스(우)

두 작품 모두 인공 피부로 감싼 실리콘 구체에 자연모를 한 올 한 올 이식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인간의 몸, 특히 머리카락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많았는데

마르지엘라가 애초에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건지, 아님 이번 전시 주제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바니타스는 어린아이의 금발부터 노인의 백발까지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며

인간의 점진적인 시간의 흐름. 노화의 흔적 표현한다.

'바니타스'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장르 중 하나인데, 인간의 공허함과 죽음에 초점을 둔 장르로

중세 말의 종교전쟁과 흑사병 등 비극적인 경험의 영향을 받아 세속적인 것들의 무의미함을 담아낸다.

마르지엘라는 여기서 인간 자체의 공허함의 표상으로 노화와 죽음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머리카락으로 '메멘토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키트

이번 전시에서 마르지엘라의 추구미, 해체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르지엘라는 종종 생산과정을 노출하거나 그 속에 숨겨진 기술을 드러내는 기법을 사용해

작품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즐겼는데, 이 작품 역시 다른 작품(토르소)를 만들기 위해 제작되는 과정에서

폐기될 일부분을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작품이 탄생하는 상상의 과정과 의도를 보여준다.

쉽게 말하자면, 드라마를 제작할 때 메이킹 필름이나 B컷 등을 공개하는 행위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작품이 탄생했을 때,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 또한 작품이라는 느낌?

이 작품은 신체 일부를 클로즈업한 모형을 아동용 장난감 세트의 형태로 구성해

불완전함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다양한 재밌는 작품들이 있었고,

모든 작품들의 명함 역시 너덜거리는 A4용지 쪼가리였다.

vibe를 통해 오디오 가이드도 사용할 수 있어서 작품을 관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기간 내에 한번 쯤 가볼 만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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